서양 정치사상사/투키디데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저자다. 그는 일반적으로 정치철학자로 생각되지 않는다. 그는 정치철학의 보편적인 문제를 명시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그를 역사학자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헤로도토스와는 달리 투키디데스는 결코 "역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사실 그의 주제가 하나의 특정한 전쟁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그는 그것에 대한 그의 연구가 전쟁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보다 일반적으로 과거에 관한 것, 나아가 미래에 관한 것까지도 명료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주제를 인간사에 관한 진리를 드러내는 특정한 사건으로 보고 있다.

투키디데스의 책에 실린 연설들은 도덕적 진지함과 절박함으로 우리에게 그들 편을 들라고 요구하지만, 이러한 연설의 솔직함과 투키디데스의 자신의 과묵함 사이에 대조를 이룬다. 확실히 그는 몇 가지 분명한 판단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는 우리에게 전쟁 중인 도시들과 그들의 지도자들, 또는 그가 관련된 많은 연설과 행동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도록 할 것인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이제 이 침묵은 그가 무관심하다는 뜻도 아니고, 그가 우리에게 권하는 대로, 찬성과 반감을 가지고 더 이상 남자나 사건에 대응하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가 능숙한 정치 교육자임을 보여준다. 그가 우리 안에서 육성하는 도덕적 진지함이 미숙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그것이 정치적 지혜에 의해 인도되거나 절정에 이르지 않는 한, 그것이 반드시 촉진하고자 하는 우리 공동체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데 충분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정치적 지혜는 주로 전례 없는 특정한 상황에 대한 좋은 판단이기 때문에, 그것은 연습을 통해 발전되는 기술로서 가르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이에 따라 투키디데스는 주어진 정책을 승인하는지 여부를 우리에게 말하는 대신 우리 스스로 판단을 내린 다음 전쟁이 제공하는 시험을 받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에게 어떤 행동에 대한 찬성과 반대 모두 의회에서 연설을 듣게 해주며, 국회의원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명시적인 지침 없이 우리 자신의 입장을 취해야 한다. 정치적 삶 자체에서와 같이, 우리는 실제로 취해진 행동의 후폭풍을 후속적으로 그리고 단계적으로 배우며, 심지어 그들의 진정한 영향력을 가늠하고 그들의 지혜에 대해 적절한 추론을 하는 것은 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확실히, 투키디데스의 서술적 세부사항에 대한 선택과 순서는, 희귀성에 대한 무게가 훨씬 더 큰 그의 노골적인 판단과 함께 우리가 이러한 성찰 속에서 우리의 방향을 찾도록 돕는다. 그러나 이것들은 오직 우리가 우리 자신의 입장을 취하고 우리의 실수로부터 배우려는 이 책의 도전을 받아들여야만 결실을 맺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