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입문/서문
서문에서 밝힌 문제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두 개의 서문을 갖고 있다. 1781년 첫 출판된 «순수이성비판»의 비교적 짧은 서문과 그리고 1787년 재판에서 초판의 서문을 대단히 증보한 서문이 있는 까닭으로 이들 두 서문의 세심한 비교와 분석은 역시 초판과 재판의 «순수이성비판»의 대강을 이해하는데 좋은 실마리를 제공한다.[1]
칸트는 «순수이성비판» 서문(A)의 첫 줄에서 인식론의 문제를 인간 이성이 당면한 숙명으로 간주하는데, 그 이유는 지금까지의 철학이 그릇된 문제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서양 철학사적으로 볼 때 이 주장은 그릇된 것이 아니다. 18세기까지 서양의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인식론 연구에서 경험을 벗어난 어떤 것을 알고자 하였으며 혹은 이를 자연의 원리로 여기는 한국에서 모호한 용어로 흔히 일컫는 «형이상학»적 [2] 문제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그리고 이 문제를 두고 서로 다투었다고 칸트는 비판하고 있다: «형이상학»은 단지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이며 시대에 따라 유행하였다.[3] 이와 같은 그릇된 철학 연구는 이제 끝이 나야 할 것이라고 칸트는 단정하며 자신의 «순수이성비판»이 새로운 철학의 장을 열게될 것이라고 말한다[4].
각주
+/-- ↑ 1787년 재판에는 초판의 서문이 실려 있지 않다. 초판과 재판을 구분하기 위하여 오늘날 초판은 A, 재판은 B로 알기 쉽게 구분하며 또한 원전 인용에 이와 같이 쓰고 있다.
- ↑ «형이상학»이라는 한자어는 일본의 학자들에 의해 처음 쓰여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 개념은 영어 «Metaphysics»을 나름대로 번역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형이상학»이라는 개념은 «존재론»을 두고 하는 말이며. «존재론»은 다시 영어 «Ontology»를 번역한 말이다. 위의 두 개념은 서양 철학에서 흔히 번갈아 쓰이고 있는데, 개념적 정의는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다. «Metaphysics»이라는 개념은 사실 철학적으로 아무런 뜻이 없는 고대 그리스어 «μετὰ τὰ φυσικὰ» (meta ta physika)를 서양 철학자가 그대로 옮겨 쓴 데에서 유래한다. «μετὰ τὰ φυσικὰ»라는 말은 안드로니코스라는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유고를 정리하면서 오늘날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로 일컬어지는 «형이상학»을 «물리학» (Physics) 다음에 배치하면서 이 저서에 마땅한 제목이 없어서 «물리학 다음에 오는 것»이라는 제목을 임시적으로 붙인 것이 오늘날 그대로 굳어져 쓰이고 있다. 참조: Hans Reiner, Die Entstehung und ursprüngliche Bedeutung des Namens Metaphysik. in: Zeitschrift für Philosophische Forschung 8, 1954, pp 210-237.
- ↑ A viii 20
- ↑ A xii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