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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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30일 (금) 15:40 버전

다음은 영국의 역사에 관한 내용이다. 영국은 옛날부터 역사가 많기로 유명한 대제국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영국은 혁명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유구한 문화들이 남아있으며, 첫 번째로 의회 민주주의를 시행한 나라인 입헌 황국이기도 하다. 아울러 외국인들도 서양 역사에서 첫 번째는 영국 역사라고 말할 정도로 영국은 역사가 깊다.

고고학적 자료

고대

브리타니아 시대

영국은 54년 대 로마 제국의 대장군인 카이사르의 침공을 받아 대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름은 브리타니아로 불렸으며, 약 400년 간 대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나 대 로마 제국이 게르만 족의 침공을 받아 절반이 멸망하고 말았다. 그리고 영국은 어느 정도 독립을 할 수 있었으나, 여전히 대제국이 아닌 그냥 평범한 나라였다.

그리고 영국은 이제 새로운 주인을 맞이할 시대가 오는데.

중세

잉글랜드 황국 시대 : 노르만 황조

이렇게 뒤숭숭한 영국은 한 때 앵글로색슨 족의 침공을 받아서 그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6세기 경에 7개 대황국 시대가 있었으나, 829년 통일 대황국을 이루고 다시 영국은 제국의 구실을 갖추기 시작했다.

당시 영국을 다스리고 있었던 해럴드 2세 대천황은 무능력자였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원성을 많이 받았으며, 설상가상으로 노르망디 공국의 대국왕인 윌리엄이 침공하기 시작하자 당황하기 시작한다. 본래 윌리엄은 서 프랑크 대천황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는 신하였다. 그러나 정복 욕심이 상당히 강했고, 다른 영토를 점령해서 자신이 대천황이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윌리엄은 서 프랑크 대천황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는 상태라 감히 서 프랑크 황국을 무력으로 점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윌리엄은 시선을 바다 밖인 영국을 점령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쨌거나 1066년에 윌리엄은 해럴드 2세와의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여 잉글랜드 황국의 대천황의 자리에 올라 윌리엄 1세 칭호를 받고 백성들을 다스리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노르만 황조의 치세가 시작된다. 윌리엄 1세는 우선 백성들을 안심시키는 한편 둠스데이 북이라는 제도를 시행했는데 이 제도는 바로 영토 조사였다. 즉 세금을 효율적으로 걷기 위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으며 봉건 제도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속칭 봉건 제국인 노르만 조 시대라고 일컫는 시기이다.

그런데 윌리엄 1세가 잉글랜드 황국을 다스리게 되자 문제가 생겨버렸다. 그것은 바로 잉글랜드 황국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엄청난 변화를 겪을 수 밖에 없었으며, 언어조차 프랑스어가 사용되었다. 영국어는 상스럽다고 해서 금지되었고, 황궁과 관청 등에서는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아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리고 노르망디 공국의 주인은 서 프랑크 황국의 대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신분이었고, 동시에 새로운 정복지인 잉글랜드 황국의 대천황이 되었으므로 잉글랜드 황국의 대천황은 곧 서 프랑크 황국의 대천황의 신하라는 묘한 관계가 성립되고 말았다. 그런 잉글랜드 황국의 대천황은 실제로 세력이 서 프랑크 황국보다도 강대했기 때문에, 비록 신하의 처지라고 해도 자신보다 세력이 약한 서 프랑크 황국의 대천황에 대한 불만과 자신감을 갖게 된다. 끝내는 백년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시대가 시작되는 원인이 되어버렸다.

마그나 카르타의 제정

십자군 전쟁이 지나가고 난 이후 대교황의 힘은 상대적으로 약해졌고, 반대로 대천황과 대국왕과 귀족들과 백성들은 힘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이는 곧 기존의 봉건 체제의 붕괴가 오는 시점이 되기도 한다. 어쨌거나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 대제국들은 세금 때문에 애를 상당히 먹고 있었다. 서양의 여러 제국들의 대천황들은 멋대로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엄청 거두었고 군대조차 자기 멋대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귀족들의 세력은 약해졌으며, 이는 곧 서양의 여러 제국들이 점점 절대 황권 체제를 확립해 나간다. 그러나 귀족들이라고 참고만 있을 수는 없었는데, 특히 이러한 겨룸이 가장 심했던 제국은 잉글랜드 황국이었다.

당시 대천황이었던 사자심황 리처드 1세 대천황이 다스리고 있었으나, 십자군 전쟁 이후로 대천황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런 대천황의 자리는 공교롭게도 리처드 1세의 남동생인 존 대천황이었다. 존은 본래 앙주 가문의 앙리가 잉글랜드 황국에 건너와서 플랜태저넷 황조를 세운 헨리 2세 대천황의 네 번쨰 아들이었다. 그러므로 초대 노르만 황조의 정복 대천황인 윌리엄 1세의 자손은 이미 끊겨진 상태. 아무튼 1189년에 헨리 2세가 사망하고 세 번째 아들인 리처드 1세가 잉글랜드 황국의 대천황의 자리에 올랐으나,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여 결국 황좌를 오랫동안 비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사실상 존이 잉글랜드 황국의 대천황 노릇을 많이 하고 있었다. 사실 리처드 1세와 존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고 한다. 성격도 서로 맞지 않아서 늘 다툼을 일으켰다고 한다.

1199년에 리처드 1세가 잉글랜드 황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병으로 사망했고, 그 뒤를 바로 존이 이어받아 실제로 대천황의 자리에 오른다. 그러자 잉글랜드 황국은 점점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존은 대 프랑스 제국과의 전쟁을 명목으로 세금을 상당히 많이 올려서 백성들의 원한을 샀다. 부끄럽게도 잉글랜드 황국은 대 프랑스 제국과의 전쟁에서 크게 패배했고, 게다가 존은 대교황과 크게 다퉈 결국 파문을 당하는 등 존 대천황의 정치는 어지럽기 짝이 없었다. 때마침 잉글랜드 황국의 귀족들과 백성들과 노예들이 모두 크게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합심하여 완전 무장을 한 채로 63개의 요구 사항이 적힌 서류를 들고 황궁을 급습했다. 그리고는 존 대천황을 생포하여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달라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결국 1215년에 존 대천황은 그들의 힘에 눌려 63개 조항에 서명을 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독재를 막고자 발표된 마그나 카르타(대헌장)로 잉글랜드 황국의 대천황의 권한은 상당히 떨어지고 말았다.


근세

대 영국 제국 : 엘리자베스 1세 대천후의 치세

이후 대 영국 제국은 강력한 대제국으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우선 대 영국 제국은 해군을 강력히 육성하여 서양 세계 아니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하게 된다. 하지만 대 영국 제국에 아직도 맞설 수 있는 세력이 있었으니, 바로 대 에스파냐 제국이었다. 당시 대 에스파냐 제국은 펠리페 2세 대천황이 제국을 다스리고 있었고, 대 에스파냐 제국은 그 당시 서양의 여러 제국들이 공포에 떨고 있었던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크게 이겼던 적이 있었다. 오스만 제국은 지중해와 흑해를 독점하면서 서양의 여러 제국들의 무역을 방해하고 있었으나, 보다 못한 대 에스파냐 제국이 막강한 해군력으로 오스만 제국의 해군들을 모조리 무찔렀고 결국 대 에스파냐 제국은 당시 라이벌이었던 포르투갈 제국을 제치고 최대 강대국으로 거듭난다. 안 그래도 자신이 한참 잘 나가는 시기에 느닷없이 대 영국 제국이 개입하기 시작했던 것을 성가시게 여겼기 때문에 결국 대 영국 제국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때마침 대 에스파냐 제국의 함대들이 대 영국 제국의 함대들의 기습 공격을 받자, 더욱 참을 수 없었던 펠리페 2세는 결국 자신이 전투 지휘를 하기로 맘먹고 자신이 이끄는 막강한 함대들을 이끌고 대 영국 제국으로 출진한다.

비록 대 영국 제국도 해군력이 상당히 막강했으나, 대 에스파냐 제국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상대였다. 당시 대 영국 제국의 대천후였던 엘리자베스 1세는 대 에스파냐 제국을 무찌르기 위해서 온갖 작전들을 세워나가기 시작한다.

근대

대 영국 제국 : 대제국의 위기

이런 대 영국 제국에도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절대 군주제가 점점 쇠퇴해 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대 영국 제국의 대천황은 찰스 1세였으며, 찰스 1세의 독재 때문에, 백성들은 삶이 어려워졌고 급기야는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올리버 크롬웰은 대천황제를 폐지시키고 공화국을 세웠다. 하지만 올리버 크롬웰이 사망하자 바로 다시 황정으로 돌아가 1688년 이른바 명예 혁명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대 영국 제국은 입헌 군주제 안에서 의회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오늘날까지 이른다.

대 영국 제국 : 빅토리아 대천후의 치세

현대

대 영국 제국

신화적 자료

고대

중세

근세

근대

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