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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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다음은 영국의 역사에 관한 내용이다. 영국은 옛날부터 역사가 많기로 유명한 대제국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영국은 혁명이 일어났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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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영국을 다스리고 있었던 해럴드 2세 대천황은 무능력자였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원성을 많이 받았으며, 설상가상으로 노르망디 공국의 대국왕인 윌리엄이 침공하기 시작하자 당황하기 시작한다. 본래 윌리엄은 서 프랑크 대천황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는 신하였다. 그러나 정복 욕심이 상당히 강했고, 다른 영토를 점령해서 자신이 대천황이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윌리엄은 서 프랑크 대천황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는 상태라 감히 서 프랑크 황국을 무력으로 점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윌리엄은 시선을 바다 밖인 영국을 점령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쨌거나 1066년에 윌리엄은 해럴드 2세와의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여 잉글랜드 황국의 대천황의 자리에 올라 윌리엄 1세 칭호를 받고 백성들을 다스리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노르만 황조의 치세가 시작된다. 윌리엄 1세는 우선 백성들을 안심시키는 한편 둠스데이 북이라는 제도를 시행했는데 이 제도는 바로 영토 조사였다. 즉 세금을 효율적으로 걷기걷어가서 대황국의 발전을 위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것을 대 영국 제국의 봉건 제도의 일환이라고시초라고 할 수 있겠다. 속칭 봉건 제국인 노르만 황조 시대라고 일컫는 시기이다.
 
그런데 윌리엄 1세가 잉글랜드 황국을 다스리게 되자 문제가 생겨버렸다. 그것은 바로 잉글랜드 황국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엄청난 변화를 겪을 수 밖에 없었으며, 언어조차 프랑스어가 사용되었다. 영국어는 상스럽다고 해서 금지되었고, 황궁과 관청 등에서는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아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리고 노르망디 공국의 주인은 서 프랑크 황국의 대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신분이었고, 동시에 새로운 정복지인 잉글랜드 황국의 대천황이 되었으므로 잉글랜드 황국의 대천황은 곧 서 프랑크 황국의 대천황의 신하라는 묘한 관계가 성립되고 말았다. 그런 잉글랜드 황국의 대천황은 실제로 세력이 서 프랑크 황국보다도 강대했기 때문에, 비록 신하의 처지라고 해도 자신보다 세력이 약한 서 프랑크 황국의 대천황에 대한 불만과 자신감을 갖게 된다. 끝내는 백년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시대가 시작되는 원인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