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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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 왕망을 무찌르고 대한 제국의 혈통인 유수가 대천황의 자리에 올랐다. 유수는 저주받은 시안을 버리고 과감히 수도를 뤄양으로 옮기며 경제 발전을 위해서 갖은 노력을 했다. 그리고 이때 희대의 발명품인 종이가 등장하게 되었는데, 바로 황실 고위 관리인 채륜이 나무와 갖은 재료들을 활용해서 만든 것이 종이인 것이다. 종이는 세계로 널리 퍼져나가 중국의 발명품에 속하게 되었다.
 
=== 대한 제국 : 삼국 시대 ===
 
대한 제국이 거의 망해갈 무렵에, 황궁은 대천황을 보좌하는 열 명의 내시들이 제국을 말아먹고 있었다. 이들은 십상시로 불리었고 그 당시 대천황인 유굉을 보좌하면서 자신들이 권력을 멋대로 행사해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십상시에 대항해서 노란 두건을 쓴 도적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마는데, 이것이 바로 황건적의 난이라고 불리우는 반란이다. 황건적의 대장인 장각은 아우인 장보와 장량과 힘을 합쳐 대한 제국을 멸망시키고 자신들만의 황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백성들을 선동했고, 선동된 백성들은 대한 제국을 멸망시키고 황건적이 황국을 세울 수 있게 도와주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황건적은 대한 제국을 보호하려는 군벌들에 의해서 결국 무장 진압되고 말았고 장각과 장보와 장량도 전사하고 말자, 황건적의 잔당들은 뿔뿔이 흩어져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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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조조의 부하 장수들도 결코 호락호락하지는 않았고, 이들은 조조를 목숨 걸고 지켜나감으로써 손권과 유비의 추가적인 공격을 막아내는 데 성공한다. 다행히 조조는 부하 장수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수도인 뤄양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 대위 제국 ====
 
먼저 조비가 뤄양에 수도를 정함으로써, 대천황이 되었다. 과거 조조는 스스로 대천황이 되는 것을 사양하고 끝까지 대한 제국의 대신이자 대위 제국의 대국왕으로 남아서 유협 대천황을 잘 보살피다가 사망했으나, 세 번째 아들인 조비는 아버지와는 다르게 권력욕이 생겨났고, 결국 대한 제국의 마지막 대천황인 유협을 황좌에서 몰아내고 자신이 황좌에 앉음으로써 새로운 대제국의 대천황이 된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인 조조에게는 태조 무대천황으로 추증하였다. 조비는 대제국을 세우면서 자신들에게 반발했던 세력들을 숙청해나가기 시작한다. 심지어 조비는 자신들의 형제들조차 세력이 커질 것을 우려하여 그들의 권한을 최대한으로 빼앗아버리거나 몰래 암살시켜버리는 등 만악을 저지르면서까지 대제국을 위해서 발전을 시켜나간다. 특히 조조의 네 번째 아들인 조창에게는 자신의 황궁으로 강제로 끌고 와서 그의 군대를 모조리 몰수하여 자신의 군대로 편입시키며 그를 시골로 내쫓았으며, 조조의 다섯 번째 아들인 조식에게는 자신의 황궁으로 강제로 끌고 와서 시를 여러 편 짓게 했으며 그가 자신이 내세운 조건에 맞게 시를 잘 지어내자 그의 벼슬을 모조리 빼앗고 시골로 내쫓았으며, 조조의 여섯 번째 아들인 조웅에게는 겁을 주어 그가 결국 자살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과거 아버지인 조조 시절에 조조에게 끔찍이 충성을 다 했던 신하들도 자신에게 반대하는 자들은 자신에게 충성을 다 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그들을 처형시키거나 혹은 시골로 내쫓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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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조비의 첫 번째 아들인 조예가 대천황의 자리를 물려받게 된다. 우선 조예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백성들을 위한 정책들을 시행했다. 그리고 조예는 자신의 아버지인 조비에게 세조 문대천황으로 추증하였다. 조예 역시 할아버지인 조조와 아버지인 조비처럼 똑똑하고 용감한 대천황이었다. 조예는 우선 과거 조비 대천황 시절에 억울하게 벼슬 자리에서 쫓겨난 대신들을 다시 복귀시켜, 그들이 대제국을 위해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아낌없이 도와주었다. 한편으로는 백성들의 삶을 잘 파악하여 백성들이 사는 데 어려움이 없게 노력을 해 왔다. 하지만 조예는 당시 나이가 어린 탓에 남의 고자질을 잘 믿는 흠집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증거로 조조 대국왕 시절 때부터 대위 제국을 섬긴 사마의를 자신에게 반역을 한다는 증거를 알아채고, 결국 그의 벼슬을 모조리 빼앗아 시골로 내쫓아버렸다.(사실 사마의는 반역을 할 생각이 없었으나, 이는 대촉 제국이 대위 제국을 공격하기 위해서 대촉 제국의 대승상인 제갈량이 자신에게 위협을 가하려는 사마의를 미리 방해하기 위한 계책이었던 것이다. 즉 첩자들을 이용하여 대위 제국의 영토 곳곳마다 사마의가 반역을 꾀한다는 공문을 퍼뜨려, 결국 대위 제국의 대천황이 이를 알아채고 사마의를 파직시킨 것이었다.)
 
==== 대오 제국 ====
 
먼저 손권이 난징에 수도를 정함으로써, 대천황이 되었다. 본래 손권은 대국왕으로써 만족해나가며 대제국을 잘 발전시켜 나가고 있었으나, 대신들이 손권에게 대천황의 직위에 오를 것을 상주했고, 결국 손권은 대제국의 힘을 막강히 키우기 위해서 대천황의 자리에 오른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인 손견에게는 무열대천황으로 추증했으나, 예외적으로 자신의 첫 번째 형인 손책에게는 장사환대국왕으로밖에 추증을 안 했다.(왜냐하면 손책에게 대천황 직위를 추증하게 된다면 결국 손권은 대천황이 아닌 섭정관이 되어버려, 결국 손책의 자손들에게 대천황의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자신은 대천황으로써 손책에게 대천황 직위를 추증하지 않은 것.) 한편으로는 손권은 대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대촉 제국과의 동맹 관계를 더욱 유지시키면서 대위 제국을 멸망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손권은 대외적인 문제들보다 대내적인 문제들에 더욱 힘을 기울였으며, 특히 민생 안정에 엄청난 힘을 썼다. 경제 발전을 이룩하면서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고, 그 결과 경제력은 계속 성장해나가기 시작한다. 대위 제국의 침입에도 유능한 여러 대신들을 이용해서 무사히 막아내었고 더 이상 대위 제국이 함부로 쳐들어오지 못하게 할 정도로 군사력도 키워나갔다. 또한 손권은 유능한 대신들을 활용하여 자신의 대제국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던 대오 제국의 동남 지역인 산월 제국을 토벌하여 영토를 점점 넓혀나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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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손권은 나이가 든 말년에 노망이 나 버렸고, 자신이 믿고 아껴왔던 대신들조차 모조리 귀양 보내버리거나 사형에 처하는 등 온갖 악행들을 저질렀다. 결국 손권의 뒤를 이은 대천황이 손권의 일곱 번째 아들인 손량이었는데, 지나치게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 흠이었다. 본래 손권은 자신의 첫 번째 아들인 손등에게 대천황의 자리를 물려주려고 하였으나, 손등이 일찍 죽어버렸기 때문에 결국 손권은 남아있는 자식들 중에 대천황의 자리를 줄 수 밖에 없었다. 불행히도 두 번째 아들인 손려마저 일찍 죽어버렸기 때문에 결국 세 번째 아들인 손화(황태자)와 네 번째 아들인 손패(노대국왕) 중에 대천황을 물려주어야 했다. 하지만 늙어 노망이 나 버린 손권은 황태자와 대국왕의 구별을 없애버렸고, 대오 제국의 조정은 손화파와 손패파로 나뉘어졌다. 손권은 이 사태를 종결하고자 눈물을 머금고 손패를 죽여버리고, 손화를 황태자의 자리에서 내쫓아 버리고 남양대국왕으로 강등시킨 뒤 황궁에서 내쫓아버렸다.
 
==== 대촉 제국 ====
 
먼저 유비가 청두에 수도를 정함으로써, 대천황이 되었다. 사실 유비는 대천황의 자리를 계속 거부해왔었는데, 바로 유비는 대한 제국의 충실한 신하였기 때문이었다. 대한 제국이 비록 대위 제국에 의해서 망해버렸지만, 여전히 유비는 자신은 영원한 대한 제국의 신하라면서 지내왔다. 그러나 조비가 유협을 다른 지역으로 내쫓아내고 자신이 대위 제국의 대천황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다가, 결국 대신들이 간곡히 상주하여 할 수 없이 유비는 대한 제국의 신하로써 대한 제국을 계승하기 위해서 대천황의 자리에 오른다. 그러는 한편 유비는 자신의 의형제인 관우를 처형한 대오 제국의 대국왕인 손권을 없애기 위해서 대오 제국을 공격하기 위해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대신들은 대천황의 이러한 계획을 막으려고 했는데, 유비를 크게 도와 대승상의 자리에 오른 제갈량마저 유비의 이 미친 계획을 막으려고 애를 썼을 정도였다.(사실 관우가 죽은 이유는 당시 대위 제국의 대국왕이었던 조조의 계책에 의해서 대오 제국과 대촉 제국이 서로 싸우도록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영토 반환 문제로 대오 제국과 대촉 제국은 서로 신경전을 펼치고 있었는데, 대오 제국의 대승상인 여몽이 대촉 제국에 의해 빼앗긴 영토를 돌려받기 위해서 계책을 썼고, 마침내 전쟁에서 관우를 전사하게 만든 것이다. 이 때문에 대오 제국과 대촉 제국의 관계는 더욱 험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