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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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 제국 ===
 
드디어 반란을 성공적으로 일으킨 왕망이 대천황의 자리에 올랐다.
 
 
=== 대한 제국 :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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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 제국 : 삼국 시대 ===
 
대한 제국이 거의 망해갈 무렵에, 황궁은 대천황을 보좌하는 열 명의 내시들이 제국을대제국을 말아먹고 있었다. 이들은 십상시로 불리었고 그 당시 대천황인 유굉을 보좌하면서 자신들이 권력을 멋대로 행사해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십상시에 대항해서 노란 두건을 쓴 도적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마는데, 이것이 바로 황건적의 난이라고 불리우는 반란이다. 황건적의 대장인 장각은 아우인 장보와 장량과 힘을 합쳐 대한 제국을 멸망시키고 자신들만의 황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백성들을 선동했고, 선동된 백성들은 대한 제국을 멸망시키고 황건적이 황국을 세울 수 있게 도와주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황건적은 대한 제국을 보호하려는 군벌들에군주들에 의해서 결국 무장 진압되고 말았고 장각과 장보와 장량도 전사하고 말자, 황건적의 잔당들은 뿔뿔이 흩어져버리고 만다.
 
그런데 문제는 황건적들을 멸망시킨 세력들이 대천황의 자리를 넘보고 있었다. 다른 군주들이 대천황의 자리를 넘보고 있을 정도라면, 그만큼 대한 제국은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는 증거다. 게다가 기존의 대천황인 유굉이 사망하고 그의 첫 번째 아들인 유변이 어린 나이에 대천황의 자리에 오른다. 결국 황실 내시들이었던 십상시들이 어린 대천황을 깔보며 자신들의 권위를 강력히 하기 위해서 제대로 난리를 치기 시작하는데,시작한다. 그 당시 대천황의 대신이요 대천후의 오빠이자 대사마였던 하진을 십상시들이 몰래 암살해버리는 사건이 일어난다. 물론 십상시들은십상시들의 악행에 참다 못해 조조와 원소와 같은 군주들에 의해서 십상시들은 모조리 처형당했으며, 대천황과 황족들은 이 난리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황궁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피신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대천황 일족들 앞에 나타난 어떤 군주가 다가오더니 대천황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대천황과 황족들을 납치해버렸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 군주는 동탁이라는 자였으며, 본래 이민족 출신의 장군이었으나 대한 제국이 힘을 잃어갈 무렵 권력욕이 제대로 발동해서 결국 때를 보다가 대천황과 황족들을 납치하고는 다시 뤄양으로 이끌고 가 버린다.
 
동탁은 본래 권력욕이 상당히 심했던 사람이었는데, 그 증거로 자신이 대승상의 자리에 오르자 멋대로 대천황을 갈아 치워버리는 악행을 저질렀다. 대신들이 모조리 반대했지만, 동탁에게는 당시 가장 뛰어난 무술을 가지고 있는 여포라는 부하가 있었기 때문에 겁도 없이 대신들의 의견도 무시하고 기존의 대천황인 유변을 황좌의 자리에서 내쫓았으며, 유굉의 두 번째 아들이자 유변의 남동생인 유협을 대천황의 자리에 앉혀버렸다. 이렇듯 동탁은 대천황을 갈아치우거나갈아치워버린 이후, 자신에 대해서 반대하는 대신들은 모조리 죽여버리거나,쫓아내거나 죽여버렸다. 심지어는 죄 없는 백성들의 재산을 몰수하거나,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않는다면 그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기까지 했다!
 
끝내 동탁의 악행에 참다 못한 지방의 군주들이 동탁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키고 말았다. 물론 명목상으로는 대천황을 구원하고 자신이 새로운 실력자가 되기 위해서였지만, 어쨌든 동탁의 악행은 다른 지방의 군주들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반 동탁 연합군을 결성한 자는 조조였는데, 본래 조조 역시 대천황을 모시는 대신이었지만 동탁의 악행을 참지 못하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서 반 동탁 연합군을 결성한 것이다. 반 동탁 연합군은 지방의 군주들이 일치 단결하여 만든 세력이었고, 세력은 나름 컸지만 사실상 어중이 떠중이들이 모인 허접한 세력들이었다. 게다가 반 동탁 연합군의 대장은 성격이 우유부단한 원소가 되었고, 원소는 대장 노릇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이렇듯 반 동탁 연합군은 당시 창 강 지역에서 강력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장군군주인 손견을 선두로 동탁이 있는 뤄양으로 출격했다. 처음에 손견은 동탁의 부하인 화웅을 전사시키는 등 뛰어난 능력으로 거의 승기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손견을 질투하는 반 동탁 연합군들의 군주들의 계략에 의해, 손견에게 군량을 지급해 주지 않았고 끝내 손견의 군대는 군량이 없어서 패배하고 말았다. 그리고 손견은 반 동탁 연합군의 군주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싶어했으나, 부하 장수들의 만류로 참고 결국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결국 반 동탁 연합군은 서로 믿지 못하여, 내부에서 싸움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비록 반 동탁 연합군이 이렇다할 성과도 내지 못하고 결국 해산되기 일부 직전까지 왔으나, 동탁은 그래도 손견을 포함한 다른 지방의 군주들을 두려워했다. 결국 동탁은 이 일을 해결하고자 자신이 대천황인 양 권력을 또다시 이용하였는데, 바로 대제국의 수도를 옮기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결국 대신 왕윤과 여포의 활약으로 대역적 동탁은 사망하고 말았다. 동탁의 시체는 장안에시안에 있는 큰 광장에 방치되었는데, 장안의시안의 모든 시민들과 동탁에 의해서 강제로 장안으로시안으로 이주를 당한 뤄양의 모든 시민들은 같이 동탁의 시체를 마구 때리고 오물을 쏟아붇기까지 했다. 그것마저 모자라 동탁의 옷을 벗겨 그의 배꼽 위에 커다란 촛대를 세워 촛대에 불을 붙였는데, 동탁의 뱃 속에 있던 기름들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동탁의 시체는 흉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아무튼 이렇게 대역적 동탁을 처단하는 일은 무사히 끝났지만, 동탁의 부하들이었던 이각과 곽사 일행이 몰래 반란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조조는 이각과 곽사의 세력을 모조리 무찌르고 자신이 직접 유협 대천황을 모시게 되었다. 유협 대천황은 조조에게 대승상이라는 높은 벼슬을 직접 하사했으며, 조조는 거기에 보답하기 위해서 황폐한 뤄양을 복구하기 시작하였고 대천황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을 제거해나갔다. 이 덕분에 조조는 자신의 유능한 부하들이 상당히 많아졌고, 문관으로나 무관으로나 할 것 없이 매우 유능한 부하들이 많아져서 사실상 최대 군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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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수 제국 ===
 
대수 제국의 대천황인 양견이 위•진•남북조드디어 혼란했던 남•북조 시대를 종결시키고, 중국을 모조리 통일하는 데 성공한다. 양견은 우선 시안에 수도를 정했고,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하기 시작한다. 그 증거로 양견은 중국에서 첫 번째로 과거 제도를 시행한 장본인이 되었고, 관리를 채용함에 있어서 실력 위주로 선발하여 백성들로부터 큰 지지를 얻는다.
 
=== 대당 제국 : 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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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민 족과 창 강 남쪽 사람들은 어땠는가. 바로 몽골 족과 서양 사람들보다 대접을 받지 못한 짐승같은 대접을 받으면서 살았다. 왜냐하면 알다시피 한민 족과 창 강 남쪽 사람들은 감히 대원 제국에 맞서 싸우려다 실패했기 때문에, 대원 제국의 대천황은 이들을 억누르고 탄압하는 정책을 많이 썼다. 중국의 전통 민족인 한민 족이 최초로 이민족인 몽골 족에게 짐승같은 대접을 받아 가면서 살았다니, 이는 중국 역사상 분명히 치욕적인 시대였을 것이다.
 
그러나 자랑스런 중국 민족인 한민 족이 이대로 몽골 족에게 당하며 포기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듯이, "칼은 붓을 자를 수 있지만, 붓을 가진 사람의 원통한 마음을 자를 수는 없다. 또 제 아무리 바람이 거세어도, 뿌리 깊은 나무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한민 족은 몽골 족에 대항하기 위한 계책들을 세우기도 했다. 비록 앞서 말했듯이 몽골 족의 포악한 정치는 한민 족들의 마음을 약하게 했지만, 그래도 한민 족은 중국 민족의 자랑스러운 민족이요 결코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랑스런 중국 민족인 한민 족이 이대로 당하며 포기하고만 있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바로 중추절을 이용해서 몰래 쪽지를 돌려 대원 제국에 반란을 일으키는 방법을 모색해내기도 했다. 이것을 흔히 중추 월병 전략이라고 불리우며, 접시 맨 밑에 반란을 일으킬 것을 독려하는 종이를 놓고 그 위에 맛있는 떡들을 올려 종이가 대원 제국의 첩자들에게 보이지 않게 했다.
 
그러나 자랑스런 중국 민족인 한민 족이 이대로 당하며 포기하고만 있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바로 중추절을 이용해서 몰래 쪽지를 돌려 대원 제국에 반란을 일으키는 방법을 모색해내기도 했다. 이것을 흔히 중추 월병 전략이라고 불리우며, 접시 맨 밑에 반란을 일으킬 것을 독려하는 종이를 놓고 그 위에 맛있는 떡들을 올려 종이가 대원 제국의 첩자들에게 보이지 않게 했다.
 
=== 대명 제국 ===
 
대명 제국의 대천황인 주원장은 홍건적으로서 크게 활동하다가, 끝내 백성들과 군인들의 지원을 받아서 대원 제국을 멸망시킨다. 그리고 주원장은 대당 제국 못지 않을 정도의 찬란함을 가진 대명 제국을 세운다세우고 대천황의 자리에 오른다. 참고로 주원장은 중국 역사상 두 번째로 평민 출신으로 대천황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기도 하다. 주원장은 우선 수도를 난징으로 정했고, 백성들을 편히 쉬게 하는 한편 군사력을 강하게 하여 마침내 황허 강 북쪽까지 진출하여 세력을 엄청 넓혀간다. 주원장은 정치 발전과 경제 발전 등 모든 면에서 통합적으로 발전을 시켜나갔다. 경제적으로는 당연히 창 강 쪽에 수도가 있었으므로 발전해나가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창 강의 비옥한 영토에서 나오는 쌀과 보리와 소와 돼지 등 농산물과 축산물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 대순 제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