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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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
=== 대 프랑스 제국 : 역사를 바꾼 대 프랑스 제국 대혁명 ===
 
절대 황권을 휘둘렀던 루이 14세가 1715년에 사망하고, 겨우 5살 난 증손자인 루이 15세가 대천황의 자리에 오르자, 대 프랑스 제국은 더욱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과거 루이 14세 시절에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약했던 귀족들이 점점 세력을 넓히기 시작한다. 이들은 대천황을 허수아비처럼 만들어버렸고, 심지어는 세금 제도까지 자기 멋대로 뜯어고쳐 그들이 내야 할 세금을 모두 평민들이랑 노예들에게 떠맡겨버리는 악행까지 저질렀다! 사실 대 프랑스 제국은 엄격한 신분 제도의 사회였고, 제 1 신분(황족, 성직자)과 제 2 신분(귀족, 장군)과 제 3 신분(중산층, 평민)이 있었다. 제 1 신분과 제 2 신분은 겨우 2%에 지나지 않았으나, 엄청난 특권을 누렸고 이들은 세금도 적게 내거나 아예 내지도 않았다. 반면 제 3 신분은 특권이란 꿈도 꾸지 못했고, 높은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관직의 자리에 오르는 것도 어려웠다. 더군다나 세금까지 모두 맡아서 내야 했으니, 제 3 신분의 불평 불만이 얼마나 많았을까! 특히 제 3 신분 중에서 가장 부유한 중산층은 이러한 신분 제도에 대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치밀었을 정도였다. 더욱이 중산층들은 계몽주의 사상으로 이미 새로운 세계(자유 세계)에 눈을 떴던 만큼, 잘못된 제도를 과감히 없애고 황족과 귀족 계급을 없앨 자유와 평등의 새 세계를 목이 타도록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대 프랑스 제국은 루이 16세가 대천황의 자리에 오르고 나서 더욱 시끄러워졌다. 안 그래도 대 프랑스 제국은 대 미국 제국의 독립 전쟁을 도와주다가 엄청난 빚에 졌기 때문이었다.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제국의 수입으로도 어림없었고 식민지에서도 거두어들인 것으로도 어림없었다. 더군다나 부유한 귀족들은 더는 제국에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고 했고, 결국 그 빚은 고스란히 백성들과 노예들에게 떠맡겨졌다. 대 프랑스 제국은 이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삼부회라는 제도를 다시 부활시키려고 했다.(삼부회는 과거 루이 13세 대천황 시절에도 있었으나 곧 폐지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귀족들이 세금 내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그나마 세금을 낼 자는 백성들 중에서 가장 부유한 중산층이었다. 하지만 그 중산층조차도 세금만 낼 수는 없다고 항의했고 만약에 우리한테서 세금을 받고 싶다면 자신들도 제국의 일에 참여하게 해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처음에는 대천황과 대신들도 반대했지만, 워낙 재정난이 심했기 때문에 결국 삼부회를 소집하기로 결정했다.
 
더구나 대 프랑스 제국은 1774년에 루이 16세가 대천황의 자리에 오르고 나서 더욱 시끄러워졌다. 안 그래도 대 프랑스 제국은 대 미국 제국의 독립 전쟁을 도와주다가 엄청난 빚에 졌기 때문이었다.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제국의 수입으로도 어림없었고 식민지에서도 거두어들인 것으로도 어림없었다. 더군다나 부유한 귀족들은 더는 제국에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고 했고, 결국 그 빚은 고스란히 백성들과 노예들에게 떠맡겨졌다. 대 프랑스 제국은 이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삼부회라는 제도를 다시 부활시키려고 했다.(삼부회는 과거 루이 13세 대천황 시절에도 있었으나 곧 폐지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귀족들이 세금 내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그나마 세금을 낼 자는 백성들 중에서 가장 부유한 중산층이었다. 하지만 그 중산층조차도 세금만 낼 수는 없다고 항의했고, 만약에 우리한테서 세금을 받고 싶다면 자신들도 제국의 일에 참여하게 해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처음에는 대천황과 대신들도 반대했지만, 워낙 재정난이 심했기 때문에 결국 1789년에 삼부회를 소집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삼부회는 열리자마자 엄청난 논쟁 끝에 해체되고 말았는데, 바로 표 계산 때문이었다. 회의에는 제 1 신분(황족, 성직자)과 제 2 신분(귀족, 장군)과 제 3 신분(중산층)이 참여했는데, 제 1 신분과 제 2 신분의 주장은 사람 수에 관계없이 각 신분의 전체 의견을 한 표로 하자는 것이었고, 제 3 신분은 한 사람이 한 표씩 던져 그 합계로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원래대로 제 3 신분의 의견이 매우 공정하고 현대적이었지만, 아직까지는 제 1 신분과 제 2 신분의 힘이 절대적으로 강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제 3 신분이 양보를 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제 3 신분이 이대로 포기할 리가 없었는데.
 
이로써 삼부회는 제 1 신분과 제 2 신분과 제 3 신분이 모두 참여함으로써, 대국민의 국정 참여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검은 옷을 입은 대국민 대표들 600명이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촛불을 들고 회의장인 생루이 교회로 향했다. 그런데 삼부회는 열리자마자 엄청난 논쟁 끝에 해체되고 말았는데, 바로 표 계산 때문이었다. 회의에는 제 1 신분(황족, 성직자)과신분과 제 2 신분(귀족, 장군)과신분과 제 3 신분(중산층)이신분이 참여했는데, 제 1 신분과 제 2 신분의 주장은 사람 수에 관계없이 각 신분의 전체 의견을 한 표로 하자는 것이었고, 제 3 신분은 한 사람이 한 표씩 던져 그 합계로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원래대로 제 3 신분의 의견이 매우 공정하고 현대적이었지만, 아직까지는 제 1 신분과 제 2 신분의 힘이 절대적으로 강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제 3 신분이 양보를 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제 3 신분이 이대로 포기할 리가 없었는데.
특히 루이 16세는 절대 황정을 강요해왔고 그에 걸맞게 독재 정치를 해 왔기 때문이었다. 결국 참고 참아왔던 백성들과 노예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혁명을 일으킬 준비를 했다. 저 포악한 대천황을 몰아내고 우리들이 직접 대제국을 다스릴 것이라는 계획도 세웠을 정도로 대 프랑스 제국은 정말로 어지러웠다. 그리고 백성들과 노예들은 제국을 새로 갈아 엎기 위해서 착실한 준비를 시행해나가고 있었다. 그 증거로 백성들과 노예들은 스스로를 혁명군이라고 자칭하면서, 당시 대 프랑스 제국에서 악명이 높았던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기로 결정했다. 바스티유 감옥은 대제국에 반란을 일으켰거나 혹은 살인 같은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들이 갇힌 곳이었다. 그런데 그 감옥 안에는 혁명 준비를 해 오다가 대제국의 탄압을 받고 갇혀 있는 열사들도 꽤 많았다. 혁명군은 우선 이 열사들을 구출하고 그들의 힘을 빌어 혁명에 성공하기 위해서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아무튼 삼부회가 해체되고 나서 결국 제 3 신분은, 대국민 대표들의 모임을 가져야 한다며 1789년에 대 프랑스 제국을 대표하는 대국민 회의의 결성을 결정했다. 이 소식을 들은 제 1 신분과 제 2 신분은 같은 해에 대책 마련을 위해서 회의를 결성하자, 제 3 신분은 이 회의를 무효화하기 위해서 회의장을 습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회의장의 문은 황실 보초병들이 굳게 지키고 있어서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었고, 게다가 비까지 내려 결국 제 3 신분은 실외에 있기 어려운 관계로 실내인 테니스 코트로 모이기로 했다. 대국민 대표는 테니스 코트에서 모여 역사적인 '테니스 코트 선언'을 했다. 대국민들은 대 프랑스 제국이 정당한 헌법을 제정할 때까지 공동으로 투쟁할 것을 엄숙히 선언했고, 또한 대국민 의회는 필요에 따라 대천황이 원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열릴 것이며, 거기다가 특권층들을 봐 주지 않는 공평한 제도를 이룩할 것을 강력히 선언했다! 이런 대국민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대국민 의회가 탄생했고, 대표는 콩트 드 미라보가 선출됐다.
 
이 소식을 들은 루이 16세는 이 대국민 회의를 무효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진보적인 성직자들과 진보적인 귀족들이 대국민 의회를 돕기 시작하자, 하는 수 없이 같은 해에 인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만일 루이 16세가 대국민 의회를 진정으로 인정했떠라면, 대 프랑스 제국은 혁명을 겪지 않고 입헌 황국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대천황과 귀족들은 대국민 의회를 없애기 위해서, 틈만 나면 대국민 세력을 꺾으려고 하였다.
 
특히 루이 16세는 절대 황정을 강요해왔고 그에 걸맞게 독재 정치를 해 왔기 때문이었다. 결국 참고 참아왔던 백성들과 노예들은대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혁명을 일으킬 준비를 했다. 저 포악한 대천황을 몰아내고 우리들이 직접 대제국을 다스릴 것이라는 계획도 세웠을 정도로 대 프랑스 제국은 정말로 어지러웠다. 그리고 백성들과 노예들은대국민들은 제국을 새로 갈아 엎기 위해서 착실한 준비를 시행해나가고 있었다. 그 증거로 백성들과 노예들은대국민들은 스스로를 혁명군이라고 자칭하면서, 당시 대 프랑스 제국에서 악명이 높았던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기로 결정했다. 바스티유 감옥은 대제국에 반란을 일으켰거나 혹은 살인 같은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들이 갇힌 곳이었다. 그런데 그 감옥 안에는 혁명 준비를 해 오다가 대제국의 탄압을 받고 갇혀 있는 열사들도 꽤 많았다. 혁명군은 우선 이 열사들을 구출하고 그들의 힘을 빌어 혁명에 성공하기 위해서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이렇게 분위기가 좋지 못했을 때 더욱 분위기가 안 좋게 흘러가 루이 16세는 최후를 맛보게 되는데, 바로 루이 16세의 비밀 외교 문서가 혁명군에 의해서 발각된 것이었다. 그 비밀 외교 문서는 루이 16세가 혁명군을 무찌르기 위해서 외국의 여러 제국들에게 군사 지원을 요청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는데, 운 나쁘게도 혁명군에 의해 발각되었으니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졌다. 그리로 루이 16세의 아내이자 대천후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대진 제국의 대천황인 사마충이 했던 말을 비슷하게 말한 적도 있었으나, 사실상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런 말을 직접 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