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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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유적지로는 단양 상시리 바위그늘, 공주 석장리, 평남 상원 검은모루, 연천 전곡리, 청원 두루봉 동굴, 평양 덕천 승리산 동굴등이 있다. 석장리에서는 1964년에 남한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된 구석기유적이고 전곡리에서는 유럽식의 아슐리안계 주먹도끼가 아시아에서 최초로 발견됐다.
;신석기
*유명한 유적지로는 제주 고산리, 양양 오산리, 부산 동산동, 웅기 굴포리, 서울 암사동등이암사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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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
;조선
*병자호란: 청나라가 조선이 친명 정책을 계속 유지해서 쳐들어옴 - 인조, 청나라에 항복/ 청나라 승리(청나라 태종이 [[w:삼전도비|삼전도비]]를 세웠다.)
 
=== 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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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군
*한(漢)은 전후(戰後) 조선의 일부 지역에 4군을 설치했으나 강력한 저항으로 약화되다 결국 고구려의 공격으로 없어졌다.
 
;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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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이 멸망한 이후 만주와 한반도에 걸쳐서 부여, 고구려, 삼한(마한, 진한, 변한), 동예, 옥저등의 나라가 세워졌다.
 
;;부여夫餘
*기원전 2세기경 세워졌으며 1세기경부터 만주의 송화강유역의 평지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49년 중국식 왕호를 쓰고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으며 사신을 보냈다.
*285년 선비족의 침략으로 쇠퇴했고 494년 고구려의 문자왕에 의해 편입됐다.
*왕 아래에는 가축의 이름을 딴 마가, 우가, 저가, 구가와 대사자, 사자등을 뒀다.
*4가는 각기 행정구역인 사출도(四出道)를 다스리며 왕이 다스리는 중앙과 합쳐 5부를 편성했다.
*대가(大加)들은 왕을 제가회의에서 뽑기도 하고 자연재해가 일어나 흉년이 들면 왕을 사형시키기도 했다.
*농경과 목축이 주된 산업이었고 말, 모피등이 유명했다.
*영고迎鼓라는 제천행사가 12월에 열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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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의 투기를 사형에 처함.
 
;;고구려高句麗
*기원전 37년 부여출신 주몽이 압록강의 지류인 동가강 유역의 졸본에 고구려를 건국했다.
*5부족연맹체(계루부, 관노부, 소노부, 순노부, 절노부)로 태조왕 때부터 계루부에서 주도권을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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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 동맹이라는 제천행사를 했다.
 
;;옥저
*오늘날의 함흥평야 일대에 있었다.
*옥저에는 왕이 없고 읍락마다 읍군邑君, 삼로三老라는 군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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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에 있어서 중국의 선진문화수용이 늦었으며 고구려의 압력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고구려에 정복됐다.
 
;;동예
*오늘날의 강원도 북부에 있었다.
*왕은 없고 후, 읍군, 삼로 등의 군장이 있었다.
*방직기술이 발달했고 단궁(나무 활), 과하마(키 작은 말)등이 유명했다.
*매년 10월 무천(舞天)이라는 제천행사가 있었다.
*같은 부족내에 결혼하지 않는 족외혼이 있었다.
*타 부족의 영역에 침범하면 노비, 소, 말로 무는 책화가 있었다.
*변방에 있어서 중국의 선진문화수용이 늦었으며 고구려의 압력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고구려에 정복됐다.
 
;;삼한
*고조선의 유이민이 대거 남하하며 철기문화가 토착문화와 합치며 발전했다.
*마한의 목지국의 지배자가 진왕으로 추대되어 삼한의 세력을 쥐었다.
*대족장은 신지, 견지등으로 소족장은 부례, 읍차등으로 불렸다.
*신성한 지역인 소도(蘇塗)는 의례를 여는 곳으로 죄인이 여기에 도망가도 함부로 잡지 못했다.
 
;;;마한
*충청, 경기, 전라도에 54개의 나라가 있었는데 그 중 백제국이 마한을 합쳐서 백제로 발전시켰다.
 
;;;진한
*대구, 경주를 중심으로 12개의 나라가 있었는데 그 중 사로국이 진한을 합쳐서 신라로 발전시켰다.
 
;;;변한
*낙동강유역을 중심으로 12개의 나라가 있었는데 후에 가야로 발전했다.
*철이 많이 나와서 외국에 수출을 했다.
 
;삼국 시대
;;고구려
*태조왕(太祖王47~165,53~146재위):56년 옥저와 동에를동예를 복속했고 부여를 공격했으며 요동과 살수에 진출했다.
*고국천왕(故國川王179~197재위):부족적 전통의 5부를 행정적 5부로 개편하고 왕위 계승을 부자상속으로 바꿨으며 을파소의 건의로 진대법을 실시했다.
*소수림왕(小獸林王371~384재위):372년 불교를 수용하고 태학을 세웠으며 373년 율령을 반포했다.
*광개토대왕(廣開土王374~412,391~412재위):북으로는 여진과 거란을 정복하며 만주로, 서쪽으로는 선비족을 격파하며 요동으로 나아갔으며 남쪽으로 백제를 격파하여 임진강까지 닿기도 하였다. 또한 우리 역사 최초로 영락(永樂)이란 연호를 사용했다.
*광개토대왕릉비:414년 장수왕이 아버지인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칭송하기 위해 세운 높이 약 6.39m의 비로 1775자가 새겨져 있으며 지금의 지린성 지안현 통구에 있다. 앞부분엔 주몽신화를 싣고 있으며 앞부분 일부와 가운데부분에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칭송하고 있으며 끝부분에는 수묘인에 대해 기록돼있다.
*장수왕(長壽王394~491,412년음력10월~491년음력12월재위):주로 남진정책을 펼쳤는데 이는 427년 평양천도를 통해 대표되며 475년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시켜 개로왕을 죽이고 이것들은 중원고구려비에 잘 반영됐다. 또한 지방의 5부를 정비하고 경당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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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왕(嬰陽王590~618재위):거듭된 수의 침입을 물리치고 이문진으로 하여금 유기 100권을 요약한 신집5권을 600년 편찬케 했다.
 
;;백제
*고구려에서 온 온조(溫祚-18~28재위)가 위례성을 중심으로 건국했다.
*고이왕(古爾王234~286재위):한강 장악을 장악했고 관등제를 정비했으며 262년 율령을 반포했다.
*근초고왕(近肖古王346~375재위):349년 평양성을 공격하고 369년 마한의 잔여세력을 정복하기도 했다. 또한 동진과 372년 수교를 맺고 가야, 왜와도 교류를 하며 요서, 산동, 구주에 진출하기도 했다. 부자상속체제를 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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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왕(東城王479~501재위):493년 신라와 결혼동맹을 맺고 또한 탐라(제주도)를 복속했다.
 
;;신라
*[[w:박혁거세|박혁거세]]가 기원전 57년 건국했다.
*왕호 변천:박혁거세赫居世-거서간居西干(지배자란 뜻)/남해南解-차차웅次次雄(제사장, 무당이란 뜻)/유리儒理-이사금尼師今(연장자란 뜻)/내물奈勿-마립간麻立干(우두머리란 뜻)/지증왕 이후-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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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흥왕(法興王514~540재위):517년 병부(군사업무를 맏는 기구)를 설치하고 상대등제도를 마련했으며 530년 공복을 제정했다. 또한 율령을 반포하고 골품제를 정비하며 527년 불교공인, 건원建元이란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며 신라 발전의 토대를 이뤄냈다.
 
;;가야
*42년 [[w:김수로왕|김수로왕]]에 의해 건국됐다.
*초기에는 김해의 금관가야(신라가 가락국을 병합 후의 국명이다.)가 주도했다가 400년전후로 고구려의 공격으로 그 땅이 낙동강 서쪽으로 축소되며 고령의 대가야가 가야를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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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
;대한민국
*1945년, 일본이 [제 2차 세계 대전]의 원자폭탄을원자폭탄에 맞고의해 항복 및 대한민국 등 여러 일본 식민지 국가들 모두 해방독립되었다.
*1950년 6월 25일, 6.25전쟁 / 대부분지역을 북한이 점령하지만 인천상륙작전으로 반격, 북한을 산악지역으로 몰아냈으나 중국이 북한을 도와서 1.4 후퇴 및 휴전(1953년 7월 27일)
*1984년 : 아시안 게임
*1988년 : 서울 올림픽
*2002년 : 한일 월드컵
 
;북한
*[[w: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분류:역사]]